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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이야기

EPISODE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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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많은 사람들은 이 시간에 바쁘게 움직인다. 점심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지.
모두가 분주한 와중이다. 당신에게는 해당사항이 없겠지만. 햇빛에 의해서 몸이 타버리게 될테니까.
하지만, 시대가 발전함에 따라서 햇빛을 차단할 수 있는 용품들이 많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에, 당신은 흡혈을 하는 존재에 속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점심에 당당히 활동할 수 있었다.

카스티아:시대란 변하는 법이니까.
양산과 두꺼운 코트에 의지해 천천히, 조심스레 걸으면서 목적지로 향하겠지.
오늘의 목적지는...

[ - ]:당신의 남은 일들을 정리한다고 했지. 당신은 그러기로 마음먹었다.
그러하기에, 당신은 출판사를 향하기로 했다. 그렇기에, 지금의 당신이 보고 있는 갈색의 문은 목적지의 도착을 의미했다.
고풍스러운 형태로 장식된 문이다. 당신의 작품이 팔리지 않은 것과는 별개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은 잘 팔렸다나.
들어가면 분주하게 바쁘지만 붉은 단풍을 연상하게 하는 당신의 편집자가 있다.

카스티아:햇빛이 들지 않는 것을 확인하면, 양산을 접고는 그녀에게 다가선다.
이쪽을 눈치채지 못하면, 양산 끝으로 두어번 바닥을 두드려 존재를 알리겠지.

[ - ]:당신은 문을 열고서는 안의 광경을 보았다. 저번과는 세세하게 달라진 게 많군.
하지만, 쌓여있는 책들의 재고는 여전하며, 거기에는 당신의 작품도 있다. 그런 사무실에서 당신은 편집자에게 찾아갔다.

하세가와 코이네 :"아, 카스티아 씨."
녹차를 마시던 그녀는 당신에게 인사했다.

카스티아: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는, 그녀의 책상으로 시선을 옮긴다.
쌓인 일은 많아보이는가?

하세가와 코이네 :"어라라, 무슨일이신가요?"
아니, 그렇지는 않아보이는군. 그녀의 책상은 비어있다. 오늘은 일이 많지 않은 모양이다. 그 와중에, 그녀는 녹차를 마시면서 당신이 알아먹을 수 없는 고문서를 읽고 있었다.
보아하지, 그녀의 고향에서부터 가져온 책처럼 보이는군. 그녀는 책을 덮었다.

카스티아:"향후, 예정에 관해서."
짧게 말하고는, 그 책의 표지를 보자.
아마 표지도 읽을 수 없는 문자겠지만.

하세가와 코이네 :"아, 네. 잠시만요~."
그러면, 당신이 그 책을 본다면 확실히 읽을 수 없다. 그녀의 고향은 야마토고, 고국의 언어로 적혀있다면 일종의 한문을 기반으로 한 언어겠지.
물론, 세계에는 공용어가 이미 존재하고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본국의 언어라는 것은 땔 수 없는 관계일것이다.
그러면, 그녀는 당신에게 차를 준비해줬다. 아마도, 당신이 자주 마시는 것이었을터다. 그리고, 자리를 한 번 정리하고서는 당신이 앉을 의자도 반대편에 놓아줬다.
"자, 앉으세요."

카스티아:고향, 뿌리, 근간. 뭐라고 불러도 좋지만, 인간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결코 지울 수 없는 요소 중의 하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자리에 앉아 그녀를 바라본다.
다른 작가들처럼 교묘한 말재주나, 도망가는 기술은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지.
"잠시 포울리엄을 떠나 있을 예정이야."

하세가와 코이네 :"어라~? 계속 여기에 머무시지 않으셨나요.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그러면, 그녀는 특유의 말투를 그대로 들어내면서 그렇게 물었다. 갈색의 머리카락이 어깨를 걸쳐서 흘러내렸다.

카스티아:시벨리의 얼굴을 문득 떠올리고는, 눈살이 살짝 찌푸려지겠지.
"...문제가, 생겨서."
빚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 할 필요는 없다.
'개인적인 문제' 정도의 표현이면, 그녀도 얼추 알아듣겠지.

하세가와 코이네 :"아아~. 하지만 걱정이네요. 최근에 집필하시고 계신 작품의 경우에는 가능성이 있다고 저는 봤는걸요."
"혹시, 개인적인 문제를 떠나서 그것도 포함되는건가요오?"

카스티아:최근 집필 중인 것이라...
두개나 되지만, 아마 그녀가 말하는 것이라면─
미세하게, 고개를 수직으로 흔든다.

하세가와 코이네 :정확하게, 무엇을 말하는 것이었나?

카스티아:아마, 아직 제목을 정하지 못한 이야기다.
과거를 바꾸고, 세계를 구하는 이야기 정도라고 해두자.
다른 하나는, 아직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다.

하세가와 코이네 :"에에, 기운을 차려주세요. 선생님의 작품은 독특한 매력이 있답니다."
"저번에도 문레이디, 저희 나라의 말로 하자면 월희일까요. 그것도 매니아들은 계속 봐주셨고요."
"편지도 왔답니다. 우후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나른하고, 평화로운 성격의 그녀에게는 당신이 작품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우울하게 보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카스티아:소위 말하는 팬레터인가...
"그런가."
이번에도 짧게 대답하고는, 그녀와 눈을 맟춘다.
"하지만, 정말로 어쩔 수 없는 문제라."

하세가와 코이네 :그녀는 조용하게 웃었다. 당신에게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남아있는지는 몰라도, 저 미소는 당신을 편하게 해주었다.
그녀의 느긋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는 같이 여행이라도 가는 게 좋지 않을까. 같은 생각도 종종 들게 했을터다.
"그럼....어쩔 수 없죠. 다만, 그러면 이제 원고의 경우에는 완전한 중단이라고 봐야할까요?"

카스티아:그 말에는, 잠깐 침묵한다.
중단이라...
머리를 옆으로 흔든다. 반쯤 무의식에서 나온 행동이겠지.
"원고는, 이동하면서 쓸 예정."
"전달은 조금, 늦을거 같지만."

하세가와 코이네 :"아아, 그러시군요. 괜찮아요. 그러면, 우편이라도 좋으니 이쪽으로 보내주세요?"
"전달은 느리겠지만, 일단은 그 속도에 연연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카스티아:"완성된다면."
주소는 알고 있다.
돌아올 때까지 자신이 원고를 완성할 수 있을지는 확신하지 못하겠다만.

하세가와 코이네 :"그럼요. 특히, 카스티아씨는 몸을 조심해주세요. 항상 느끼는거지만, 혈색이 안 좋으셔서."
"밥은 제대로 먹으시는거에요?"
"잠은?"

카스티아:이래서다.
다른 작가들은 마감을 독촉하는 편집자를 더 무서워하는 것 같지만...
아무래도, 자연스레 선을 넘어 이쪽을 신경 쓰는 그녀의 거리감은 대처하기가 어렵다.
밥이니 잠이니, 건강이니... 흡혈귀와는 무연한 것들.
한숨을 내쉬고는, 언제나 그랬듯이 살짝 시선을 돌리며 침묵하지.

하세가와 코이네 :그녀는 녹차를 다시 한 모금을 마셨다.
"에휴, 역시 이렇다니까. 지금 가시는 곳에서도 건강은 꼭 챙겨야해요. 저번에 다른 선생님께서 무리하시다가 과로로 쓰러지셨으니까."
그녀는 조금의 불평을 늘어놨다. 귀여운 불평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후우. 그래도 꼭 건강하게 돌아오셔야 해요?"

카스티아:고개를 끄덕인다.
이 편집자는 걱정이 너무 많은게 탈이다.

하세가와 코이네 :"아, 혹시 세르부움쪽으로 가세요?"

카스티아:덕분에 원고를 세번이나 고쳐썼던 것은... 떠올리지 말자.
"...어쩌면?"
그닥 내키지는 않지만, 빚에 목줄이 채인 몸이다.
가라하면, 가야하는 법이다.

하세가와 코이네 :"아아, 그러면 제가 세르부움에서 머물수 있는 곳을 소개시켜드릴께요. 마침, 제 친구가 있거든요."
그녀는 하얀 봉투와 편지지를 꺼내더니 거기에 무엇인가를 적기 시작했다.

카스티아:그녀의 친구라.
어떤 인물일까 가볍게 상상하다가도, 의미 없는 일이란 것을 깨닫고는 그만둔다.
이젠 이것도 슬슬 직업병이라 해도 되겠군.

하세가와 코이네 :그러면, 그녀는 편지를 다 적고서는 봉투에 넣었다. 그리고, 예쁘게 접어서 풀칠을 한 다음에 당신에게 건냈다.
"예전에, 제가 동양에 있을 때 사귄 친구에요. 워낙, 당찬 친구지만 제가 보냈다고 하면 이해해줄꺼에요."
"세르부움의 베가 지방에 있는 에스파....아, 역시 어렵네. 에스파......레놀? 아, 그 이름이었지. 그쪽으로 가시면 살리라는 친구가 맞이해줄꺼에요."
"후후, 어떻게 살고 있을려나...."
그녀는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카스티아:...뭔가 방금 불길한 예감이 잠깐 든 것 같지만, 무시하자.

하세가와 코이네 :"아, 그리고. 펜레터가 하나 왔었다고 했잖아요."

카스티아:그러고보니, 그랬었지.

하세가와 코이네 :"그 펜레터에는 이런 질문이 있더라고요. 으음, 뭐라고 했더라."
"주인공은 어째서 히로인과 같이 할 수 없었나? 라고 말이에요."
"그 때, 작성하신 작품의 엔딩에서 굿 루트를 말하는 듯해요. 주인공은 히로인이 없이 살아가기에, 흡혈귀라는 존재와 멀어졌지만, 어째서....그런 선택을 했느냐. 라고."
"다소, 의아한 질문이기는 하네요. 독자분은 주인공이 인간이 아니길 원했을지도요."
"아, 트루 엔딩이었네요!"

카스티아:"..."
어째서냐, 라고 물어도...
이쪽이야말로, 묻고싶다.
왜 그는 그 때ㅡ
거기까지, 사고를 멈춘다.

[ - ]:기억이라는 것은 흘러가는 태엽과 같다. 당신에게 문제가 있다면, 당신의 태엽은 너무 녹슬었다.
이런 질문에는 뇌가 정지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어째서, 그는 거기서 자신과 함께 할 수 없었나.
당신은 소설의 엔딩을 떠올렸다. 엔딩은 두 개였다. 그리고, 번외격으로 다른 루트들을 서술했던 것으로 알고있다.
하지만, 어째서 자신은 그런 엔딩을 트루엔딩이라고 했는가. 굿엔딩이 더 행복하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을터다.
흡혈귀와 인간. 그 둘이 행복한 것이 어째서 진실이 아니었으며, 인간은 인간으로. 흡혈귀는 흡혈귀로.
그 역할로 돌아가는 것은 어째서 진실이었나?

카스티아:아직 자신은 이해할 수 없는 영역.
그러나, 그 순간. 분명 자신은 인간이라는 것에 매료되었다.
그가 보여준, 알 수 없는 빛남이라는 것에.
그렇기에, 그것을 _트루(진실된) 엔딩(끝)_이라 칭하고 쓴 것이겠지.

[ - ]:하지만, 당신은 끝이 나지 않았다. 그 흡혈귀는 어찌 되었을지는 몰라도.

하세가와 코이네 :"....선생님?"
그녀는 당신의 눈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카스티아:그녀의 부름에, 사고의 바다에서 현실로 돌아온다.
"아."

하세가와 코이네 :"괜찮으세요? 역시, 상태가 안 좋으신게 분명해요. 좀 쉬시는 게 어떨까요?"
그녀의 눈빛은 걱정이 가득했다.

카스티아:"...조금은, 그럴지도 모르겠네."
어제의 일들을 떠올린다.
갑작스레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옛 지인으로부터의 편지부터, 그 수수께끼의 소년까지.
그들을 떠올리며, 표정을 살짝 굳힌다.
그리고는, 코이네를 바라보겠지.

카스티아:"그럼, 조언을 받아들이도록 할까."
마침 용무도 끝났다.
다른 곳에서의 일은 남아있지만.

하세가와 코이네 :"아하하, 그럼요. 역시 쉬는 게 좋으실꺼에요. 그래도, 나중에 한 번 찾아와주세요?"
"그 때는 제가 맛있는 거라도 대접해드릴테니까요."
그녀는 그렇게 다시 웃었다.

카스티아:"기억해두지."
그리 말하고는, 옆에 걸어둔 양산을 집어들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대로 작별을 고하고는, 문까지 걸어나서겠지.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기 전ㅡ
잠깐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며 말할 것이다.
"...질문에 대한, 답 말인데."

하세가와 코이네 :"아, 네."
그녀는 능숙하게 노트를 꺼냈다. 메모를 할 생각이었나보다.

카스티아:"그는, 인간이었으니까."

하세가와 코이네 :"...항상, 생각하는거지만 선생님은 인간을 정말 좋아하시네요."
"그러면, 그렇게 전할게요."

카스티아:그러면, 그대로 문을 나선다.
한동안, 이곳으로 돌아올 일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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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찝찝하다. 당신은 항상 이 장소에 올 때마다 생각했다. 피를 제공해주며, 당신의 삶을 유지해주는 곳이다.
하지만, 때때로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가슴속에 맴돌았다.
인간은 모든 가능성은 있지만, 그것과는 다르게 추악함도 분명히 있다.
그것은 인간의 이중성이며, 벗어날 수 없는 그늘과도 다름이 없다. 그런 사실을 당신은 이 연구소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어지럽게 늘어놓은 실험에 필요한 도구들과 물병들이 거슬린다. 그리 느꼈을지도 모른다.

슈바르츠 월터 :그리고, 실험하는 소리는 아직도 들려오고 있었다. 당신이 이 안으로 걸음을 올겼다면, 이제는 익숙하게 느껴지는 얼굴이 있었다.
".....아아, 손님이군요!"

카스티아: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본다.
실험이라, 뭘 하고 있지?

슈바르츠 월터 :알 수 없는 기포들이 끓어넘치고 있다. 그 와중에, 당신이 볼 수 있는 것은 기기묘한 형태의 결정들이었다.
그 외에도, 생물의 것으로 보이는 가죽이나 피가 있다.
그는 가볍게 웃었다. 아니, 언제나 웃고 있었다. 하지만, 미소라는 것이 이렇게 기분이 나쁠 수 있을까.
그는옆에 있는 살덩이를 치워버렸다.

카스티아:본래 미소란, 이빨을 드러내는 위협의 행위다.
그런 구절이 떠오르겠군.

슈바르츠 월터 :"무슨 일이세요? 오늘은 찾아오는 날이 아닌데~."
"아아, 혹시 저랑 같이 연구라도 하고 싶은건가요? 너무, 기뻐라!"
"저랑 같이 해보죠. 당신의 몸과 제 실력이 있다면 불사에 다다를 수 있어요. 현자의 돌도 제조할 수 있고요."
"아아, 기쁘다고요? 아아, 멋져!"
"어라? 표정이 상당히 안 좋으시네요. 혹시, 오늘 섭취한 피가 안 좋으셨는지?"
"어떠한 부분에서 기분이 안 좋았는지 말해주실래요? 연구를 진행해야하니까요."

슈바르츠 월터 :끝없는 말이 늘어진다. 그래. 이 남자는 미쳐있다.
깔끔하게, 아름답게. 그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카스티아:사람을 보는 것도, 괴물을 보는 것도, 악마를 보는 것도, 흡혈귀를 보는 것도 아닌ㅡ
어디까지나, '실험 대상'을 보는 시선.

그 시선을 마주할 때마다, 참을 수 없는 불쾌감이 몰려왔다.
몇번 그 눈을 짓뭉개 버릴까 생각했던가.
그리 하더라도, 이 남자는 변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행하지는 않았지만.

슈바르츠 월터 :"아, 걱정마요. 저는 당신을 우선순위로 여기니까요. 아아, 멋져! 이런 아름다운 분이 어디에 있을.....컥, 콜록! 콜록!"
남자는 갑작스럽게 기침을 하더니, 피를 뱉어냈다. 으흐흐흐, 하고서는 웃으면서 옆에 있는 천으로 피를 닦아냈다.
"이런 추태를!"
"제가 저번에도 말했지만, 제가 살 날이 얼마 안 남았거든요"
"근데, 제 피를 본다는 감각은 되게 신선하네요. 그쵸?"

카스티아:그런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불쾌하게 내려다본다.

슈바르츠 월터 :월터는 자신의 가방에서 약을 쥐어서 꺼냈다. 그리고, 삼키고서는 대충 옆에 있는 물병의 물을 마셨다.
"아, 아아아. 어디까지 이야기를 했지. 어디까지?"
"아, 무슨 일로 찾아오신거냐고 했죠."
"무슨 일이죠?"
남자는 흐릿한 눈빛이 명확한 초점을 가지고서 당신을 비춰낸다.

카스티아:"...자리를 한동안 비울 예정이다."
짧게 용건만을 내뱉는다.
"오늘은 거기에 필요한 것들의 조달을 위해서."

슈바르츠 월터 :"와우! 운명의 만남인가봐요! 저도 이제 이 곳을 떠날 예정인데!"
"아아, 하지만 저는 먼 곳으로 가니까 보기 힘들겠네요. 이런, 슬퍼라. 저희들의 끈적한 관계는 마음에 들었는데!"

카스티아:그 말에, 약간의 의아함을 내비친다.
뒤의 말은... 수식어 같은거다. 무시하자.
"네가 연구실을 버린다니, 별 일이군."
본래 개인적으로 깊게 파고들고 싶지는 않다만...
눈앞의 그가 어떤 이인지 알기에, 그렇기에 그가 이 연구환경을 버리는 것이 수상하기 짝이 없겠지.

슈바르츠 월터 :"아하, 아하하하하! 아하하하하!"
"그럼요! 제가 안타깝지만, 이곳을 버리는 셈이 되겠지만 괜찮아요."
"제 지병은 불치의 병. 살아남기에는 글러먹었답니다. 하지만, 그러면 연구도 못하고, 살아가지도 못하잖아요?"
"그러니까, 다소 무리하지만 여행을 떠나서 불사를 얻어낼거랍니다."
"저에게는 가능성이 보여요. 이 확률적인 가능성을 계산하는 것은 저와 같은 연금술사의 특기니까."
"아아, 그럼요. 66.6% 마법의 숫자죠!"

카스티아:"지옥에라도 떠나려고?"
비꼬듯이 말한다.

슈바르츠 월터 :"설마요."

슈바르츠 월터 :"저는 살아남을거랍니다. 저는 아직, 태초의 원죄에 대해서 조사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악덕, 많은 죄악, 많은 악행은 분명히 갈래가 나뉘어진 것입니다."
"아하하, 상상만 해도 흥분되네요. 원죄라는 것을 새롭게 찾아낸다는 것은!"
"단순히, 신학적으로 존재하는 허구의 개념이라고 여태까지 알려져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꺼에요."
"이 세상은 저울의 무게로 다 잴 수 있으니까!"
서류를 허공에 던진다. 순식간에, 만세를 하며 서류를 던져버리고서는, 서류가 허공에 흩날린다.

카스티아:그것들을 슥 보고는, 모멸감에 찬 채 내뱉는다.
"완전히 미쳤군."
아아.
정말로, 불쾌하기 짝이 없는 녀석이다.
악성, 죄악, 집착, 호기심, 광기의 덩어리와 같은 인간.
그러나, 가장 불쾌한 것은ㅡ

카스티아:이런 이에게도, 흥미를 느끼는 자기 자신이겠지.
먹어치운 기억 속의 경험들은, 눈앞의 존재를 악이라 규정하고, 광인이라 경고한다.
그러나, 흡혈귀에게 인간의 선악은 들어맞지 않는다.
그렇기에, 자신은 이 긴 시간 동안 그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던 것이겠지.
아니, 어쩌면ㅡ
그 광기마저, '인간'으로 받아들이고 있을지도.

슈바르츠 월터 :"아아, 그래서 흡혈귀가 흥미롭다는거에요."
"당신들은 분명히 인간과 관련이 있고,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기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이게,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를 아세요!?"
"당신들의 기원에 대해서 알아보면 분명히 인간의 끝자락의 기원의 끝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기원을 알아낼 수 있을거에요!"
"중요한 점은, 아.....이 세상은 절대로 자연스럽게 태어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겠죠."

슈바르츠 월터 :"자, 그래서 무슨 용건이라고요? 물건을 챙긴다고 했던가?"
걸음을 옮긴다. 그는 자신의 책상을 밀쳐버리고서는 물품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카스티아:"신의 존재를 긍정하는 연금술사라."
그런 그의 뒤를 보며 말한다.
세상이 자연스레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만든 이가 있다는 의미.

슈바르츠 월터 :"신의 존재는 확실히 있습니다. 하지만, 뭔가 착각하고 계실지도 몰라요."
"어째서, 신이 이 세상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시죠?"
그는 물건을 찾으면서 말했다.
"왜, 신은 신이지만, 어째서 신이 아닌 이는 신이 아닌가?"
"어째서, 어째서 이 세상은 이렇게나 답답한가!"
"고민해본 적 없으세요?"

카스티아:인상을 찌푸린다.
불쾌하지만, 자신 또한 그런 고민을 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기에.

슈바르츠 월터 :"아하, 그러니까. 필요한 물품은 일단 저 망할 태양에서부터의 탈출인가요?"
"하지만, 그것은 종족적 변화를 요구하는데요!"

카스티아:"네놈이라면 비슷한 것 정도는 만들어뒀겠지."
어떻게 보면, 신뢰라고 할 수 있는 발언.
이 미치광이라면 그 정도라면 해뒀거나, 할 수 있다는 믿음.

슈바르츠 월터 :"아, 그러면 질문이에요."
"검이에요. 반지에요. 목걸이에요. 아니면, 장갑이에요?"

카스티아:적어도 네개는 만들어뒀다는 의미로 들리는군.
미친 놈.
반지와 목걸이는 논외다.
저런 놈에게 그런걸 받는다는 상상만으로도 불쾌해지는군.

슈바르츠 월터 :"아, 아니면 다른 형태를 말씀하셔도 좋아요!"
"저는 당신을 상상하며 만든 게 많답니다."

카스티아:검도, 항상 차고 다니기엔 불편하지.
"...장갑으로."

슈바르츠 월터 :검은 색의 장갑이 당신을 향해서 던져젔다. 한 쌍의 장갑이고, 장갑의 가운데에는 특수한 문양이 있었다.

카스티아:그것을 집어들고, 살핀다.
이쪽에 악의를 지니고 해하려한다는 생각으로 보는 것은 아니지만...
광인의 사고는 악의 없이 악을 만드는 법이지.

슈바르츠 월터 :"첫째로, 당신이 활동하기 위해서는 피가 필요하죠. 간단해요. 그것은 닿은 피를 인간의 피로 만들어요."
"제 실험작이에요. 인간의 피가 부족했거든요."
"정확하게, 다른 종족의 혈액에게만 적용되요. 짐승의 피라도 마찬가지니까요."
"아아, 이게 이렇게 쓰일줄은 몰랐는데. 혈액의 성분을 변환시키는 종류의 것이니까요."

카스티아:상상 이상으로 미친 물건이군.
"...종족의 근간을 비틀어버리는 물건 아닌가?"

슈바르츠 월터 :"하지만, 그 피는 결국에는 당신한테만 의미가 있어요. 정확하게는, 당신과 같은 흡혈귀에만."
"살아있는 생명은 의미가 없으니, 결국에는 용기에 담겨진 혈액만 변화시키는거에요."
"그리고, 그 피는 마법적인 가치가 전혀 없어요. 연금술이라면 또 다르지만!"
"그렇기에, 당신과 저한테만 의미가 있는거에요. 아아, 멋진 물건이야. 하지만, 잘가…"
그런식으로 길게 늘어놨다.

카스티아:그럼, 그 피는 어디서 오며, 그 속에 담긴 기억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ㅡ 하는 질문은 속으로 삼켜둔다.
무엇이 되든, 결코 정상적인 것을 아닐 것이란 직감이 들었기에.

슈바르츠 월터 :피를 변환하는 종류다. 당신은 이 남자와 지내면서 연금술에 대해서 어느정도는 익혔다. 쓸 정도는 아니지만.
피의 구성 성분을 변환해서, 인간의 피로 만들지만. 그 피는 가짜다.

카스티아:결국, 인공물이라는 것이군.

슈바르츠 월터 :"그 다음에, 태양이었죠! 태양, 태양, 태양....!"

카스티아:인간에게서 나오지도 않았으며 기억과 감정을 품지도 않았으며 혈액조차 아닌 것을 인간의 피라 불러야할 지는 의문이다만.

슈바르츠 월터 :이 남자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
"아아, 태양에 대해서라면 많은 걸 준비했죠. 무엇을, 어떻게 원하십니까? 원하는 형태는?"
"그리고, 재질은? 품질은? 용도는?"

카스티아:"태양빛을 막고, 낮에도 활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가능하다면 간단한 형태로."

슈바르츠 월터 :"무장이 필요하지는 않으실테고, 그쵸? 저에게 무장을 바라면……"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웃었다. 어떤 끔찍한 물건이 튀어나올지는 모른다는 뜻이겠지.

카스티아:딱 한 번 받았던 무장이 휘두르는 것만으로 흡혈귀의 팔까지 아작날 정도의 중량을 가진 검이었던가.
그 이후로 그에게 무장류는 죽어도 맡기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사용자를 고려하지 않는 '무장'은, 이미 '무기'가 아니다.

슈바르츠 월터 :그는 물건을 뒤적였다. 상당히 오래. 그리고, 은색의 팔찌를 하나 던져줬다.

카스티아:그것을 낚아채고는, 바라보겠지.
본 적 있을까?

슈바르츠 월터 :없다. 다만, 고급스러운 장식이 달려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팔찌에는 빈 관이 하나 있다. 구슬과도 같은 공간이 있는 관에는 무엇인가 담겨지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으며.
그와 동시에, 당신의 손목의 아래에서 약간의 날카로운 것이 있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일종의 팔찌의 형태를 한, 피를 빨아내서 저장하는 무언가군.

카스티아:"...피를 다루는 힘은, 태양 아래에서는 소용없다는 것을 알텐데?"

슈바르츠 월터 :"에이, 그 힘은 피를 다루는 게 아니에요."
"피가 연료로 필요할 뿐이죠."

카스티아:흑마술이 가장 먼저 떠오르겠군.

슈바르츠 월터 :"저, 대단하다고 칭찬해주실래요? 그 팔찌는 당신의 피를 빨아내고, 저장해요."
"그리고, 그것을 제물로 삼는거에요. 태양 아래에서 그 피를 소진할 때까지는 죽지 않을거에요."
"다소, 제가 아는 마녀의 힘을 빌린 작품이에요. 원래는, 흑마법에 사용해야하지만, 당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카스티아:"그래서, 태양 아래에 장시간 노출되면 그걸 막아내기 위해 죽을 때까지 내 피를 뽑아내는건가?"
이 녀석이 만든게 그런 끔찍한거 하나는 없을 리가 없지.

슈바르츠 월터 :"그럼요! 다만, 당신이 선택할 수 있어요."
"계속 피를 제물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그만두고 죽을것인지."
"한계용량은 있어서, 어느정도 저장해두면 더 이상 체혈하지는 않을 거예요!"
"다만, 부족해지면 당신의 손목에서 빨아낼 뿐이죠. 모기같죠?"

카스티아:무시하고는, 가볍게 그것을 차본다.
수상한 것에 대한 의심은 없다.

슈바르츠 월터 :푸슉, 하고서는 깔끔하게 당신의 손목에 무엇인가 박히는 느낌이 들었다.

카스티아:이 남자는 속이거나 하지 않으니까.
단지 자신이 하려는 것을 위해서라면 피해를 신경 쓰지 않는 부류일 뿐.

슈바르츠 월터 :확실히, 피를 빨아들이는 종류는 확실하다. 벌써부터, 당신의 피를 빨아들이고 있군. 그것과는 별개로, 하나의 버튼이 보인다.
버튼, 이라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버튼이라고 해둘까. 눌러보면, 체혈이 멈추는군.
체혈의 ON/OFF는 당신이 결정할 수 있다. 다만, 강도는 조절할 수 없다.
장갑의 경우에는 짐승은 물론이고, 다른 종족이나, 동물의 피도 전부 인간의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다만, 그것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피라서 생존밖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카스티아:이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가볍게 장갑과 팔찌를 찬 손을 움직여보고는, 위화감이 없음을 확인한다.

슈바르츠 월터 :장갑은 기분이 나쁘게도, 당신의 손에 딱 맞았다. 그 말은, 당신의 손의 크기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팔찌도 마찬가지였다. 당신의 손목에 딱 들어맞았다.

카스티아:확실히, 기분이 나쁘겠군.
그래봐야, 바닥까지 떨어진 평판이 더 떨어지기는 힘들겠지만.
손가락을 몇번 움직이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슈바르츠 월터 :"자, 저에게 이별의 키스를. 너무 불쌍하지 않나요? 죽을 병에 걸려서는 세상을 떠돌게 됐는데!"
"아아, 제 불쌍한 연구소. 불쌍한 작품들. 불쌍한 나."
"이렇게나 비극적일수가!"

카스티아:"...어디로 갈 생각이지."
예의상 물었다.

슈바르츠 월터 :"잘 모르겠네요. 그건~, 어딘가에는 어딘가의 것이 있겠죠."
"실험하기 좋은 장소라면 아무래도 좋을려나요?"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여전히 그 미소를 유지했다. 그리고, 의자에 가서 그는 앉았다.
"자, 또 필요하신 게 있나요?"

카스티아:"아니, 끝이다."

슈바르츠 월터 :"아하, 아하하하."
"당신의 그런 면, 여전히 저는 좋아하고 있어요. 정말 기쁜 거 있죠."
"여튼, 당신은 아셔야 해요."
"이 세상은 절대로 자연적으로 만들어질 수 없으며, 흡혈귀라는 존재의 기원은 분명히 인간에 있다는 사실을."

카스티아:...아마, 저 말은 진실일 것이라고 자신 스스로도 생각한다.
우리는 어찌하여 그들의 형상을 취한 채
그들의 기억과 감정을 먹어치우며
그들에게 매료되는가.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선...
"…그렇다면, 누군가 이 모든 것을 만들어냈다는건가."

슈바르츠 월터 :"그럼요. 저는 그렇게 믿어요."
"이게, 진실일지는 몰라도. 분명히 진실일거에요! 아하하하하!"
그는 광소했다. 저 탐구심은 확실하게 인정해줘야할지도 모른다.

카스티아:미치는 것 또한, 인간의 특권 중 하나.
아아, 인정하자.
자신이 그를 불쾌하게 여기는 것은, 그가 단순히 미쳐있기만이 아니라ㅡ
무언가에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일부 '질투'하기 때문이라고.
그렇기에, 그것이 참을 수 없이 불쾌하다고.
"그렇다면, 네가 쫓는 것은 무엇인가."

슈바르츠 월터 :"말했을텐데요!"

카스티아:알고싶다. 그런 감정의 희미한 발로.

슈바르츠 월터 :"원죄라고!"

카스티아:어디까지나, 무한한 호기심 앞에서 자극된 약간의 호기심.

슈바르츠 월터 :"이 세상의 악이라는 것은 분명히 정형화되어있습니다. 그러면, 그 태초의 것은 구분할 수 있고, 형질화되어 있는 게 분명해요!"
"그러면, 태초에는 무엇이 존재했으며, 무엇이 악으로 규정되었으며, 무엇이 죄악인가!"
"그리고, 그 죄로부터 탄생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고민해야 합니다!"

카스티아:"절대적인 악인가..."
이원론. 성악설. 그런 것들이 떠오른다.
"그것을 추구해, 무엇을 바라나?"
"그저 이해인가?"
"아니면ㅡ"
이것은,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한 것.

슈바르츠 월터 :"아아, 그것은 손에 넣고서 생각해야죠. 저는 학자니까요."
"탐구, 오로지 탐구."

카스티아:자신은, 그저 인간을 이해하기 만을 바라는 것인가ㅡ

슈바르츠 월터 :"저는, 그냥 그게 중요할 뿐이에요. 그거말고 중요한 게 있을까요?"
"알아간다는 것. 이해한다는 것. 밝혀낸다는 것!"
"저에게는, 오로지 그것만이 가치가 있으며, 증명이에요!"

카스티아:과연.
역시, 이 남자는 미쳐있다.
그에게서, 빛은 볼 수 없다.
아니, 설령 있다 하더라도.
그보다 깊은 심연에 가려져, 보이지 않겠지.
그 또한 끝없는 심연 속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빛을 찾아 헤메는 존재일테니까.

카스티아:그 수명이 다하기 전에, 거기에 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변덕이다.
아주 잠깐의 변덕.

"…"
비어있던 병을 하나 집어들고, 손바닥에 상처를 낸다.
거기에서 흐르는 피를, 병에 담고는 책상에 올려둔다.

카스티아:"물건의 댓가다."
"어떻게 쓸지는ㅡ 알아서 하도록."

슈바르츠 월터 :"아아, 이런 자비를!"
"아, 물론이죠! 이 정도라면 충분해요! 이거라면, 하하하하!"
"감사드립니다. 레이디! 당신에게 축복이 있기를!"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당신이 남겨둔 병을 허겁지겁 챙겼다.

카스티아:과연,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자신이 공언한 대로, 불사라는 이 지옥과도 같은 길에 들어설 수 있을까.
스스로가 추구하는, 빛을 찾아낼 수 있을까.
...어디까지나, 약간의 호기심.

"심연을 들어보는 자는, 자신 또한 심연에게 들여봐질 것이다. 였나..."
작게 내뱉고는, 그에게 작별인사를 고하겠지.

카스티아:"행운을 빌지."
아마, 앞으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어딘가 그런 생각을 품으며, 그의 집을 나선다.

[ - ]:운명이라는 것은 기묘했다. 이렇게나, 기묘한 일들을 많이 만들었다. 미쳐버리는 인간도, 인간을 못 잊은 흡혈귀도.
그리고, 다른 자들도 마찬가지였으며, 세상은 수 많은 운명의 실타래에 묶여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다시 체감했다.

────────────────────

[ - ]:익숙하다. 처음에 드는 감상은 그것이었을 것이다.
이 섬은 언제나 유흥과 환락의 불빛이 꺼지는 일이 없었다. 언제나, 술의 냄새가 넘쳤으며, 쾌락의 비명도 넘쳐서 흐르는 곳이 여기였다.
그리고, 당신은 그제서야 밤이 됐음을 직감했다. 상당히 그 연구실에서 시간을 많이 소모했다. 이렇게까지 걸릴 것이 아니었는데.
벌써, 시계는 저녁의 석양의 끝을 넘어섰고, 시침은 확실하게 밤의 장막이 펼쳐지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당신은 이런 유흥에 관심을 가지는 편은 아니었지. 맞는가?

카스티아:거의 가진적이 없지.
흥미가 동한 적은 있으나, 금새 시들해졌다.
흡혈귀에게 욕망이란 대부분 피와 연결된 것.
그것이 강한 만큼, 다른 것들은 옅어진다.

[ - ]:───그렇다. 당신에게 피는 무엇보다도 달콤하면서도 괴롭지만, 다른 말로는 다른 욕망들은 옅어진다. 그렇기에, 당신은 다른 일에는 흥미를 못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지금의 당신은 사람들의 인파속에서도 한 사람과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다소, 반가운 얼굴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불쾌한 얼굴일지도 모르지.
다만, 감회가 남달랐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마케니 블루홀리:"........"

카스티아:"..."
서로, 말없이 바라보고 있겠지.

마케니 블루홀리:"뭐야, 아직도 살아있었어?"
긴 침묵속에서 당신과 비슷한 키의 이 녀석은 그렇게 말했다.

카스티아:"그쪽이야말로."
"어디서, 들개의 먹이가 되어있지는 않으려나 했는데."
매도하는 듯하면서도, 늘 하던 느낌의 인사를 건넨다.
그 시절에는 서로 어디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마케니 블루홀리:당신은 떠올렸다. 당신이 활동하던 시절에는 풋내기였다. 야망만이 가득하고, 언제나 먼저 나서는 것에 급급해하던.
그리고, 그런 와중에서도 고집이 가장 쎄면서도, 어떻게든 발악하는 놈이었다.
하지만, 당신이 실의를 잃고서 떠돌던 그 때에는 볼 수 없었다. 아마도, 자신만의 모험을 하고 있었겠지.
"…들개의 먹이라니, 이봐. 이제는 베테랑이야. 댁한테 보살핌을 당하던 그 때랑은 다르다고."
팔짱을 끼고서는 그렇게 툴툴거렸다. 확실히. 예전보다는 성숙해진 티가 나는 모양이지만.

카스티아:"어라, 진흙탕에서 구르다 죽을 뻔한건 어디의 누구였더라."

과거의 인연인 탓일까, 최근 몇년 간은 그닥 보인적 없던 부드러운 어조가 나오겠지.

적어도 자신의 기억 속에서 그는, '건방지고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꼬맹이'였으니까.

마케니 블루홀리:"하, 시험해볼래? 이제는 푸른 매의 이름을 달고서 날뛰고 있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오만하게 미소지었다.

카스티아:한쪽 눈썹을 가볍게 치켜올리고는, 진심이냐는 듯이 바라본다.
그라면 알고 있을텐데. 그 괴력을.

마케니 블루홀리:"하, 따라와! 내 실력을 보여주지!"
덥썩. 당신의 손을 잡았다. 당신은 저항했을까?

카스티아:잡히는 것은, 저항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가 내 발을 움직이게 할 수 있었을까?

마케니 블루홀리: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면, 고집을 부리는 듯이 끌었지만, 무리였다.
이 꼬맹이는 괴력을 주특기로 삼는 자가 아니었다.
"아, 고집부리고 말고 따라와! 술이야!"

카스티아:술이라...
지난 몇년간 입에 댄 적도 없지만.
어느새 어둑해진 밤하늘을 본다.

마케니 블루홀리:"설마, 나한테 술로 지겠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아직도, 나는 그 때의 승부를 잊지 않았다고!"

카스티아:…뭐, 하루쯤은.

마케니 블루홀리:거친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것 같다. 어쩌면, 당신의 눈에는 애완동물일지도 모르겠지만.

카스티아:건방진 꼬맹이를 교육하는 것도 필요하겠지.
그제서야 발을 옮긴다.

[ - ]:그러면, 물어보자. 당신은 어떠한 술집으로 갔는가?

카스티아:'고급지다'와는 거리가 먼 곳이겠지.
하지만 아주 싸구려는 아닐 것이다.
아마 노동자들. 그 중에서도 벌이가 괜찮은 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술집이겠지.
시끌벅적하고, 잔이 부딫히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리는 곳.
예전에는, 자주 가고는 했던 곳.
어쩌면 맨티코어의 1층에 있는 곳일지도 모르지.

[ - ]:그렇다면, 당신과 그는 깔끔하게 이 장소로 왔다. 괴물의 속내로.
그는 이제 독한 술을 시켰다. 그의 허리에 있는 푸른 단검이 흔들리는 것을 당신은 놓치지 않았다.
확실히, 저 단검은 그 당시의 다른 동료가 그에게 주었던 것이다. 아직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용하군.
그 다음에, 음식과 술이 계속해서 나온다. 다만, 독한 술들이었다. 마케니는 오만하게 웃었다.

마케니 블루홀리:"하하! 어디 한 번 누가 이기나 보자고!"
"장담하는데, 응? 내가 이번에는 이길껄."

카스티아:그를 그저 바라보면서, 과거를 떠올린다.
그래, 그 때도 그는 이랬지.

마케니 블루홀리:이 꼬맹이는 술잔을 잡고서는, 한 번에 원샷을 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카스티아:그 때는, 주변에 더 많은 이들이 있었지만.
그것을 보며, 이 쪽도 잔을 들이킨다.

[ - ]:당신에게 오랜만에 들이킨 술은 달면서도, 매우 강했다.
목이 타는 거 같다. 피를 갈구하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고통이 당신의 목을 덮쳐왔다.
그리고, 마케니는 입을 열었다. 황금빛의 눈동자가 빛났다. 저 눈동자는 기억에 확실히 남아있었다.

마케니 블루홀리:"…그래서, 망할 괴력 할망구. 이제 복귀야?"

카스티아:그 단어에 대해서는 조금 할 말이 있지만, 여기서는 넘어가주자.
연상자의 여유라는 녀석이다.
"…원해서 온 건 아니지만."

마케니 블루홀리:"하, 뭐야. 그 시골처녀가 무슨 부잣집 도련님한테 끌려와서는 말할법한 대사는?!"
"어이, 예전의 그 때는 어디갔어! 응?"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앞에 있는 닭고기를 뜯어냈다.

카스티아:그런 그를, 조용히 바라본다.
예전의 그 때라.
역시, 자신은 변한 것일까.
자각은 있지만, 알 수 없다.

마케니 블루홀리:"하, 말도 안 해주겠다. 그거지? 응? 예전에 그 마귀할멈은 어디갔나 몰라."
"난 아직도 기억해. 당신이 쏘던 그 화살과 그 힘을."
"그리고, 그 냉혹함을 말이야."
"이제, 이빨 빠진 흡혈귀라도 되셨나?"

카스티아:조용히, 손가락으로 테이블 위에 올려진 그의 손등을 짓누른다.
방금의 발언은 조금 불쾌했기에.

마케니 블루홀리:"하, 성질 더러운 건 여전하네...!"
그러면, 그는 빠르게 손을 빼낸다. 당신의 손가락에 순식간에 탁자에 균열이 생긴다.
"─아직도, 그의 죽음을 잊지 못했어?"
"하, 전혀 기뻐하지 않을걸. 그 녀석은."

카스티아:…또 다시, 그 질문인가.
어째서, 이놈이고 저놈이고 그런 질문을 하는가.
당연한 것이 아닌가.
망각이라는 축복은, 너희에게만 허락된 것인데.
"...그쪽에는, 상관 없잖아?"
험한 말투가 튀어나오겠지.

마케니 블루홀리:"─하?"
그 말에 마케니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순식간에, 주변이 얼어붙었다.
이 꼬맹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생각보다 날카로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케니는 탁자에 술잔을 내려찍었다. 당신만한 괴력은 아니지만, 나름 박력은 있었다.
"뭐라는거야, 할망구가?"
"지금, 상관없다고?"

카스티아:"...그래."
험악해지는 분위기에, 습관적으로 긴장을 끌어올리며 답한다.
아아, 역시 여기는 싫다.
예전의 버릇들이 나와버린다.

마케니 블루홀리:"그거, 되게 모욕이야. 당신 복귀를 바라는 망할 놈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그리고, 그의 죽음은 어쩔 수 없는거였어. 그 녀석은 마지막까지 웃었어."
"그 광경을 나는 봤어. 그 전장에서, 그 녀석은 확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그걸, 지금 모욕하는거야?"

카스티아:그 말에, 눈을 잠시 감는다.
모욕이라.
자신들이 멋대로 기대하고.
멋대로 바라고.
멋대로 죽어나가는건, 언제나 너희ㅡ
그러나, 분노는 무산한다.

카스티아:이미, 그 감정은 희미해진지 오래기에.
흡혈을 통해 얻은 기억과 감정들의 댓가. 그저 감정의 덩어리인 무언가만이 남겠지.
다시 눈을 뜨면, 언제나의 평소처럼 무덤덤한 분위기겠지.
"...그건, 실언이었네."
"사과하지."

마케니 블루홀리:"아무래도 좋아. 진짜, 이빨이 빠져버렸구나."
"나는, 당신들만을 바라보면서 달려왔어. 그를, 그리고, 당신을."
"그 때의 그 광경을 아직도 나는 잊지 못해. 그리고, 너희들의 그 모습도."
"하지만, 내가 알던 너희들은 이제 없어. 한 녀석은 죽었고, 한 녀석은 내 앞에서 이렇게 됐지."
"나머지 녀석들은, 갈 길을 찾아서 떠났고."
"근데, 어떻게 당신이─."

마케니 블루홀리:"그렇게 말할수가 있어!"
그것은 긍지였다.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 눈에 담긴 것은 긍지를 모욕당한 전사와 같았다.
그 눈은 테오와 비슷했다. 당신을 원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당신이 일어서기를 바라며, 예전처럼 돌아와주기를.
그렇게, 소망하고 있었다.

카스티아:어째서, 그들은 그것을 바라는건가.
그들은, 나처럼 과거에 붙잡힌 이들이 아닐테인데.
그저, 눈앞의 이를 바라본다.
답을 갈구하듯이.

마케니 블루홀리:"말도 안 나와?"
"있잖아, 다른 사람은 어떻게 말했는지는 몰라도."
그는 손을 뻗었다. 당신의 멱살을 잡아챘다. 그 손길에 섬세함은 없었다.
당신은 저지할려면 할 수 있다. 하겠는가?

카스티아:아니.

마케니 블루홀리:그러면, 당신의 멱살을 잡아서 들어올리고, 순식간에 마케니는 당신과 가까운 거리에서 눈을 마주했다.
황금빛의 눈동자가 찬란하게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매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 눈동자에 있었던 것인가.
"────나는, 당신을 뛰어넘고 싶었어."
"그러니까, 인정할 수 없어. 지금의 당신은."
"나는 당신을 뛰어넘고서는, 내 앞에서 인정하게 하고 싶었어. 그리고서는, 같이 가고 싶었어."
"하지만, 지금의 당신은 그 때의 당신이 아니야. 껍데기만 남아있는거지."

마케니 블루홀리:"인정못해."
잡은 옷깃을 그는 놓았다.
"돌아와. 내가 원하던 당신으로."

카스티아:아아ㅡ
그 눈을 보고, 알아버린다.
그 시선은 분명ㅡ
자신이, '인간'을 보는 것과 닮아있음을.
괴물도 흡혈귀도 실험대상도 아닌ㅡ
마치, 자신을 '사람'으로 보는 듯한 그 눈에.

카스티아:무심코, 시선을 돌려버린다.
"…미안."
지금은, 이 말 밖에 할 수 없겠지.

마케니 블루홀리:"─결론은, 그를 잊지 못하는게 문제구나. 확실히, 인생은 그럴지도 모르지."
"좋아. 그러면, 나는 증명하겠어."
"내가 그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을."
"당신도 그러면 다시 돌아올꺼야. 내가 그 남자를 뛰어넘을 수 있다면."
"망할 마귀 할망구, 안 그래?"

카스티아:그를 넘겠다.
정말로 그럴 수 있다면.
만약, 다시 한번ㅡ
아니, 그를 뛰어넘는ㅡ
빛을, 볼 수 있다면.
자신은,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까.

카스티아:눈 앞의 그의 눈동자가, 순간 빛나보였다.
희미하고, 작았으며, 순간적인 빛이었지만.
무심코, 바라볼 정도의 빛.

마케니 블루홀리:마케니는 그 눈동자를 보고서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그걸로도 충분해. 두고봐. 언젠가는 당신의 그 눈을 사로잡을테니까."
그렇게 말하고서는, 그는 마지막으로 남은 술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과감하게 등을 돌려서 당신에게서 멀어졌다.

카스티아:그런 그를 보내며, 홀로 남은 술을 홀짝인다.
어딘지, 취하고 싶은 기분이 들테니까.
다시 한번, 보고싶다.
오랜 세월, 상실의 공포 속에 감춰져있던 갈망이 다시금 솟아오른다.
그것을 마치, 우리가 피를 바라듯이 마음 속 깊은 곳의 갈망에 가까워서ㅡ

[ - ]:당신에게 는 어떤 의미였는가? 정말로, 마케니가 그를 능가할 수 있다면.
당신은 그걸로 좋은가?

카스티아:그 빛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 인간을 알고 싶다. 마음을 이해하고 싶다.
그것이, 나의 갈망.
허나, 어딘가 다름 또한 알고 있다.
아마, 이것은 자신의 문제.
아직, 자신은 어디선가 완전히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겠지.
한 발자국을 내디디지 못한 채, 멈춰섰다.

카스티아:그렇지만ㅡ
나아가지 않으면, 바라는 것은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디서 본 것이더라.
아아, 책상 위에 던져둔 그 원고였던가.
이미, 자신도 어디선가 알고 있었겠지.
결국, 주인공(인간)과 히로인(흡혈귀)는 작별을 고했었다.

카스티아:마지막 잔을 들이키며, 생각한다.
아직, 온전하지는 않고
아마도 질질 끌을 것이며
어쩌면 끝내 해내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ㅡ

만남의 끝인, 이별의 시작을.

[ - ]:…그래. 그 정도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다만, 이제는 과거를 정리하는 게 좋을것이다.
계속 기억할 것인가. 아니면, 정리하고 나아갈것인가.
당신에게는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운명이라는 것은.
당신을 그렇게나 편하게 놔두지는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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